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미 대통령 암살" 동기

미국 대통령이 되면 언제 어디서든 암살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당연히 항상 경비가 삼엄하지만, 그래도 링컨과 케네디 대통령처럼 암살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암살 할 명확한 동기가, 예를 들어 자신의 주의주장을 확산하게 하려거나 사회 개혁을 위한 것이거나, 크고 작은 정치적 주의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한 경우도 있다.


1. 리차드 폴 파브릭(1887-1975)


존 F 케네디는 1963년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리하비 오스월드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실은 그 3년전에 73세의 리처드 폴 파브릭이라는 노인에 의해 암살의 표적이 되고있었다.



오랫동안 우편배달부로 일했던 그는 은퇴 후, 지역의 정치 집회에 자주 나타나 국가의 정치인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행위를 일삼았다. 그는 반 카톨릭 주의자, 특히 아일랜드계 케네디 일가의 부와 명성에 대한 증오를 품고있었고 하는데...


7개의 다이너마이트를 차 트렁크에 싣고, 매사추세츠 케네디의 집에서 케네디가 외출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절호의 순간이 찾아왔다.... 12월 11일, 케네디 가족은 교회에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실행을 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 그래도 양심은~~~



그렇게 실행을 연기하고 어물쩡 어물쩡 하다가, 경찰이 수상한 낡은 차를 발견하고 조사를 벌이니 트렁크에서 7개의 다이어나이트를 발견. 위험물 보관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2. 르넷 프롬(1948~)



르넷 프롬은 젊었을 때는 캘리포니아에서 아주 잘나가는 댄서로, 유럽 공연까지 갈 수 있는 실력파였다. 그러나 1963년 로스 엔젤레스로 이사, 그곳에서 술에 빠졌고, 마약도 하게되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찰스 맨슨을 만나면서부터....




찰스 맨슨은 널리 알려진 범죄 컬트 지도자. 카리스마가 있는 남자로, 자신을 중심으로 한 "패밀리"를 구축, 술과 마약과 음악을 하면서 집단 생활을 영위하며 자신의 히피 문화를 구축했다.



르넷은 맨슨의 가르침으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지 않으면 진정한 환경주의자가 될 수 없다"라고 확신. 약간 정신이 나간 상태...


1975년 9월 5일 아침,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새크라멘토 국회 의사당 공원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군중속에 붉은 옷을 입고 르넷이 있었다. 포드가 군중 앞을 지나가고 있는 순간, 르넷은 콜트 권총을 빼들었지만,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체포. 아마 일반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망설임없이 실행 했을 것이라는...


어쨌든, 그녀는 정말 포드를 죽일 의지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횡설수설 하였고, 또 다른 사람의 말로는....총에 총알도 들어있지 않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울증의 암살자였던 것이다.


3. 리차드 로렌스(1800-1861)



영국 랭크셔 출신의 리차드 로렌스는 12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오랫동안 화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콧수염, 어깨 망토를 걸치고 "우리는 잉글랜드 왕 리처드 3세"다 라고 자칭하기 시작.


영문을 모르고 당황한 사람들에게 그는, 더러운 미국 정부가 영국 왕실의 재산을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라고...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영국 국왕이었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내 재산을 빼앗아갔다라는~


사실, 로렌스의 아버지는 미국에 가본적이 없고, 물론 잉글랜드 국왕이라는 것도 그의 화려한 망상이지만, 로렌스는 잭슨 대통령의 부와 왕좌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하게 확신했다.


1835년 1월 30일, 장례식에 참석하여 잭슨을 암살하려고 한 로렌스.


잭슨 대통령 뒤에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러나 불발. 이어서 품에서 예비 권총을 꺼내 다시 방아쇠를 당겼지만 또 불발! 바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지를 당해 현행범으로 체포. 그러나 경찰에서 "잉글랜드 국왕"이라고 하고 "미국의 왕좌"라고 하는 등 불명의 진술을 계속했기 때문에 재판을 받기전에 그냥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4. 존 힝클리 주니어(1955~)



오클라호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존 힝클리는, 우수한 형에 비해 자신은 무엇을 해도 안되는 낙오자. 고교 시절은 은둔형 외톨이로, 대학에 가지도 않았고, 아르바이트도 오래하지 못했다는.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본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출연했던 여배우 조디 포스터에 첫눈에 반해버린다. "포스터와 자신은 운명의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녀가 다니는 대학에 잠입, 그녀의 하숙집이나 전화 번호를 입수하고,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거는 등의 스토킹 행위를 반복.


이렇게 해도 포스터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는, "대통령을 살해한다면, 포스터는 나를 알아봐 줄 것이다"라고 망상을 하기 시작.




1981년 3월 30일, 워싱턴 DC의 힐튼 호텔을 나서던 레이건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저격. 6발을 발사했는데, 1발은 레이건의 가슴에 명중했지만, 응급 수술 덕분에 목숨은 건졌다고 한다.


힝 클리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지만, "정신병으로 책임 능력이 없다"라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5. 존 플랑드르 슈란크(1876~1943)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존 슈란크는, 청년이 된 직후에 가족과 여자 친구를 잃어버리고 그 충격으로 성경 공부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젊은 날의 대부분을 미국 동부 해안을 유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꿈속에, 대통령 월리엄 매킨리의 유령이 나타나 슈란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살해당했다. 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사실, 맥킨리는 무정부주의자의 레온 촐고츠라는 사람에게 암살된 것이지만, 슈란크는 루스벨트를 살해하는 것은 자신에게 부과 된 운명이라고 강하게 믿고, 루스벨트 암살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그리고 1912년 10월 14일,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9000명을 앞에두고 열린 연설 대회에서 군중에 섞여있었던 슈란크는 루스벨트를 향해 총을 발포. 총알은 가슴에 명중...


슈란크는 그 자리에서 체포. 그러나 루스벨트는 총에 맞은 상태로 90분간의 연설을 마치고 간신히 병원에 도착, 목숨은 건졌다고 한다.


6. 주세페 상가라(1900~1933)



주세페 상가라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 군으로 복무 한 후, 삼촌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저지로 이주했다. 그렇게 힘든 육체 노동에 힘썼지만, 과로로 맹장염을 앓았고, 또한 만성 적으로 장에 가스가 차서 복부가 팽창한 상태로 고생하게 된다.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으며, 빈곤 생활에 허덕이던 그는, 자신을 이러한 처지에 빠뜨린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불행의 저주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의 망상은 계속 부풀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후버 대통령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데, 후버를 죽이고 사람들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시작.


후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불행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상가라는 루스벨트가 저주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생각. 그리고 1933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루스벨트가 연설을 위해 오게되었는데, 상가라는 군중에 섞여 6발을 발사. 시카고 시장이 그자리에서 즉사, 한 발의 총알은 루스벨트에 명중. 상가라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전기 의자에서 처형되었다. 여기서도 루스벨트는 죽지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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