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되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수도 있었던 군사 작전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그러나 진짜로 만약, 이 작전이 계획대로 실시되었다면?


만약,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 나치에 의연한 대응을 했었더라면...


만약,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이 지켜졌더라면...


우리 역사가 바뀌었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 1명의 판단과 선택은 역사의 큰 파도 속에서 단지 잔물결 정도의 것으로, 결국 결과는 바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실행에 옮겨졌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생각되는 미 작전 계획은?



▲ 1. 일본군의 호주 침공작전(1942년)


1942년 초기에, 일본군은 싱가포르와 자카르타 등의 전략 거점을 제압.


육해군의 우두머리들은 다음 전략을 짜고있었지만, 호주 침공도 그 선택에 포함되어 있었다. 해군은 향후 미국과 영국군의 전략 기지가 될 것으로 알려진 호주 북부에 침공을 제안했다.


그러나 육군은 이를 즉각 각하했다.


호주를 장악하려면 적어도 10사단은 필요하고, 많은 것들을 중국 전선에 할애하고 있는 이상 그런 큰 세력을 보내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었고, 공급도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


그 대신 실행 된 것이 뉴기니 섬, 솔로몬 제도, 뉴 칼레도니아, 피지를 점령하고 호주를 "봉쇄"하여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었던 것.


위의 작전도 상당한 무리가 있었던 계획이었지만...결국 뉴기니 섬의 점령조차 하지 못하고 많은 일본군이 전멸했지만....만약 위의 섬들을 놔두고 호주에 총력을 기울였다면? 



▲ 2. 1년을 앞당긴 D-Day(1943년)


1942년, 아이젠 하워 장군은 1943년 초에, 프랑스 북부에 상륙하는 작전을 영국군에 제안했다. 동부 전선에 눈코 뜰새없이 바쁜 독일군을 뒤에서 공격 해 혼란을 틈타 단번에 공세를 역전시키려고....


그러나 영국군은 이에 난색을 표한다.


프랑스 북부 독일군의 수비력은 튼튼하고, 만일 상륙했다고 해도 큰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생각. 그래서 "가담하기 쉬운" 이탈리아 군이 주력 인 북아프리카 전역에 주력하기로 결정.




어쨌든,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을 쓸어버리려 시칠리아 섬에 상륙해 남부에서 압박하는데 성공했다.


실제 D-Day,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1년 후인 1944년 6월에 실행되었다. 만약 1년이나 앞당겨 1943년에 실행되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 3. 독일군의 스위스 침공작전(1940년)


1940년, 전격적인 침공작전으로 프랑스를 항복시킨 후, 히틀러는 부하 장군들에게 중립국 스위스로의 침공 계획을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이 통칭 "탄넨바우무 작전"은, 당초 독일군 21사단으로 계획되었으나, 이탈리아 군 참전후에 계획이 재검토되어 북쪽에서 독일군 11사단, 남쪽에서 이탈리아 군 15사단으로 침공작전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유럽이라는 얼굴의 여드름"이라고 천시했었던, 스위스의 침공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히틀러의 관심은 곧 영국과 소련으로 쏠렸고, 괜히 불필요한 전력을 스위스에 사용할 여유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침공을 면한 스위스였지만, 만약 독일이 침공했다면, 앙리 기잔 장군의 지휘아래 평원의 도로를 파괴하고 무장 한 40만의 강병인 스위스 남자들이 알프스 산맥에 숨어 게릴라전을 전개.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싸울 각오로 했었을 것이다.


히틀러의 선택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 4. 독일군에 의한 영국 상륙 작전(1942년)


프랑스를 항복 시킨 독일군은, 다음의 대규모 작전으로 영국 상륙을 생각했다.


통칭 "제레베 작전"이라고 말하는, 16만 대군이 2,000여 선박에 탑승 도버 해협을 건너 상륙하는 것.


하지만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은 매우 높았고, 제공권의 지배, 영국 해군의 무력화, 해안 방어 시설의 파괴 등을 사전에 수행해야 했다.


그 제공권의 지배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 그 유명한 "영국 본토 항공전".


이에 패한 독일은 전략의 재검토를 촉구하는 동시에, 소비에트와의 싸움에 점차적으로 주력하게 되었다.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방어에 이점이 있다는....



▲ 5. 영국과 프랑스에 의한 소비에트 공습 작전(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영국군과 프랑스 군은 독일-소련의 불가침 조약하에 독일에 석유를 판매하고 있었던 소련의 유전 시설을 파괴하려고 노리고 있었다.




타겟은, 현재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 양국이 중동에 있는 기지에서 폭격기를 충분히 파견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1940년에 실제로 폭격기가 출격 한 적이 있으며, 이 때는 위협 행동만으로 실제 폭격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41년 6월에 독소 양국이 개전, 영국은 소련과 협조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작전은 수행되지 않았다.



▲ 6. 일본군의 소비에트 침공 계획(1941년)


1939년에 발생 한 노몬한 사건에서 관동군은 소련군에 패배했었지만, 1941년에 소련 영내에 침공 작전이 검토되고 있었던 것이다.


1941년 6월에 독일과 소련이 개전. 육군 내부에서 소련을 타도하는 "북진론"이 기세를 붙이고, 만약 독일이 우위에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동쪽에서 일본군이 침공, 동서에서 소련을 압박해야 한다고하면서 일본 육군성도 대 소전을 위해 준비를 진행하려했었다.


그런데 같은 달에 미국이 대일 석유 수출 전면 금지를 강행.


단순에 미국을 적으로 하는 남진론이 기세를 더해, 그해 12월 진주만 공격을 감행하게 된다.



▲ 7. 스페인 추축국으로 참전(1940년)


1940년, 독일은 영국령 지브롤터에 있는 공군 기지의 장악을 계획한다.


통칭 "펠릭스 작전"이라는 것으로, 이베리아 반도 최남단의 지브롤터 해협을 억제하는 것으로, 수에즈 운하와 영국 본토의 해상 교통로를 끊으려고 했었던 것.




히틀러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장군과 회담,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 독일군의 통과를 허용 해 줄것을 제의 , 동시에 독일군에 "협력"까지 요구.


프랑코 장군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스페인은 추축국으로서 연합군과 전쟁에 돌입하게 되어 버리는 것으로 교묘하게 거절하게 되었다는....결국 스페인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되었다.



▲ 8. 처칠의 제3차 세계 대전 계획(1945년)


독일 항복 후, 처칠은 유럽 동쪽을 압도적인 전력으로 점령 한 소련군에게 적의를 품게되었고,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구축을 소련에게 인식하게 하기위한 장엄한 군사작전을 계획했다.


작전명 "상상 작전(Operation Unthinkable)"라는 만화같은 이름.


이 전략은 1945년 7월부터, 다시 무장 한 독일군 10만 포함, 미영 독일군으로 동쪽에 전격적으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 핵무기 사용도 불가피라고 되어있었다.


이 처칠의 제안은 한시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 의해 기각되어 사장되어 버렸다. 이후 냉전 구조를 감안할 때 일단, 선견지명이 있었던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실행되었다면, 아무튼 엉망진창으로 되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