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대한 놀라운 진실 Top 10

■ 노벨 평화상 후보



히틀러는 1939년, 노벨 평화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다. 물론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 왜 후보가 되었나?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의해 선발된다. 당시 스웨덴은 나치 등 파시즘 국가에 "반대" 국가였던 것이 배경에 있다. 그 스웨덴 국회의원 에릭 브란트라는 인물이 히틀러를 풍자하기 위해 지명 한 것이라고 한다.


■ 젊은 시절 화가를 목표로 했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 화가를 목표로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라고 하는 많은 예술가가 배출 된 학교에 응시했지만, 2번이나 떨어졌다. 시험 실패 후, 가난으로 엽서 그리기에 몰두했다.



이것이 미술 교육에 강한 복수심을 가진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후에 독재자로 되어 "퇴폐 예술 추방 운동"이라는 현대 예술을 금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더 알기 쉬운 예술을 추진했었다.




■ 더치 와이프의 개발



독일군이 파리를 침공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파리에는 매춘부가 많았고, 병사들이 매춘부로부터 성병을 옮기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친위대에 가볍고 휴대하기 쉬운 실제 인간과 같은 조형을 한 인형, 지금 말대로 더치 와이프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 미션은 보르그힐드 프로젝트라고, 일급 비밀 임무로되어 있었다. 계획은 진행, 실용화 직전까지 도달했지만,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예산을 준비하지 못했고 사장되어 버렸다.


■ 첫 사랑은 유대인



히틀러가 16살 때 사랑은 한 것은, 스테파니 이삭이라는 유대인의 여성이었다.


소심한 히틀러는 그녀와 얘기할 수도 없었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기만 했다. 게다가 "그녀를 납치 해 도망가 동반 자살한다"라고하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 금연 캠페인



사실 히틀러는 금연 캠페인을 처음으로 민중에게 행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 금연 캠페인의 내용은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담배 세금을 대폭 인상한다는 것이다. 또한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교육하고 전파하는데 노력했다. 


■ 동물 애호법을 제정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동물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인간을 위해 동물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동등한 위치의 법률로서 인간과 동물은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법이다.


이 법은 동물 학대를 하거나 고생을 시키거나 하는 것을 금지했다. 덧붙여서, 지금도 독일 민법에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명기되어 있다. 애완동물을 죽이면 기물 파손에 해당한다.


■ 물에 빠져 익사할 뻔 했다



히틀러가 4살 때, 얼음이 언 호수에서 놀다가 빠져버렸다. 히틀러와 동갑내기와 놀고 있었는데, 큐게루라고 하는 소년이 그를 도와 히틀러는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나중에 큐게루가 어른이 되고, 목사가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후에 목사 동료의 고백에 의해 공개되었다.



"인명을 구한 행위에 후회는 없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라고...




■ 두번이나 목숨을 구원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군인들이 상처를 입은 히틀러의 생명을 구했다. 이 영국 군인은 헨리 탄디라고 하는 영국에서 유명한 군인이다. 그는 기사도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무기를 가지지 않은 적병은 쏘지 않는 주의였다.


헨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부상당한 독일 병을 쏘지 않았는데, 그것이 청년 시절의 히틀러였다고 한다. 이것은 나중에 히틀러 본인이 영국 총리와 회담을 할 때 말했다고...


■ 고환이 하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부상, 고환을 하나 잃었다는 도시 전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환은 두개 다 있었지만, 하나는 복부에 있는 정류장 고환이라는 병이었다고 한다. 보통이라면 태어날 때, 복부에서 고환이 내려오지만, 어떠한 원인으로 복부에 머물러 버리는 병이다.


1923년에 기록되어 있는 히틀러의 의료 기록에 "오른쪽 고환이 복부에 있다"고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고 한다.


■ 강제 수용소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피해자를 낸 홀로코스트가 행해졌던 독일 각지의 강제 수용소. 사실 히틀러 자신이 이 수용소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또한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한번도 없다. 잔학 한 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서면에 남기는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은 절대 강제 수용소와는 관련이 없다고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