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첨단 과학의 현장에서 가속기에 흰 족제비가 있을까?

일리노이 주 바타비아에 있는 Fermi 국립 가속기 연구소(FNAL)는,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대형 양성자, 반양성자 충돌형 가속기 테바트론을 가진 시설이다. 톱 쿼크의 발견에 성공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연구소는, 로버트 라스반 윌슨 초대 소장이 기획 건설을 담당해 1967년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입자 물리학 등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설립 당초, FNAL에서는 하이테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낮은 기술 솔루션이 이용되고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뭐랄까 "펠리시아"라고 하는 이름의 흰족제비가 등장한다.


"원자로의 아버지" 인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을 따서 "Fermi 국립 가속기 연구소"로 명명된 FNAL은, 선형 가속기, 부스터, 리사이쿨러 링, 메인 인젝터 링이 갖춰진 가속기를 가지고 있다.


선형 가속기는 양성자와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부스터가 그들을 가속, 리사이쿨러 링은 더 강한 빔을 얻기위해 양자를 한곳에 모으고, 인젝터 링은 리사이쿨러 링에 의해 생성 된 빔을 담아 수십만 회 회전하여 빔을 빛의 속도까지 가속시킨다.




1971년으로 되돌아가면, FNAL의 가속기의 설계는 조금 달랐었다. 현재의 가속기와 다른 점은, 메인 인젝터 링 및 리사이쿨러 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당시의 가속기는 4마일(약 6.4km)이나 되는 길이의 "메인 링"이라는 것이 이것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 메인 링에는 내부를 통과하는 입자 빔을 유도하기 위한 "쌍극자 자석"이 무려 774개나 탑재되어 있었으며, 또한 그 입자 빔을 수렴시키기위한 "사중 극 자석"이 240개나 탑재되어 있었다는 것.


<FNAL 건설 당시 모습>


이 자석들은 각각 20피트(약 6.1미터) 정도의 길이에, 무게는 무려 13톤이나 되었다. 이 자석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가동한지 불과 2일만에 코일 주위의 유리 섬유 절연이 망가져, 2개의 자석이 고장. 그로부터 몇 개월만에 가속기는 무려 350개나 되는 자석을 교환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71년 6월 30일에, 어떻게든 입자 빔을 메일 링 주위에까지 보내는데 성공. 그러나 가속기에서 가속 된 입자의 에너지가 70억 전자 볼트(eV)를 초과 한 것으로, 자석이 다시 짧아져버린다. 가속기의 고장 원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가속기에 사용하는 진공관 속에 금속의 길쭉한 조각이 남아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판명되었다고.



이 고장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흰 족제비였던 것. 다음의 사진은 당시의 가속기에 사용된 길이 300피트(약 91미터)의 진공관과 그 안에 쓰레기 청소를 위해 투입된 흰 족제비 펠리시아.


흰 족제비가 진공 관내를 청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한 것은 영국인 엔지니어 로버트 셀던 씨. FNAL의 전 책임자 프랭크 벡은 "요크셔의 셀던이 살던 지역에서는, 흰 족제비를 사냥꾼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라고 적고있다.




FNAL은 미네소타 게이로드에 있는 농장에서 특별히 길이 15인치(약 38cm)의 작은 흰 족제비를 조달. 이 흰 족제비는 농장에서 가장 작은 개체로, 모피는 얼굴의 흰 반점을 제외하고 갈색과 검은 색이었다. FNAL은 흰 족제비를 35달러에 구입하여 펠리시아라고 명명했다고.


펠리시아가 진공관에서 똥을 싸버리면, 요것도 골치아픈 물건이되어 버린다. 그래서 펠리시아의 목 둘레에 실을 달아 이에 세제를 적신 면봉을 묶어, 진공관 안의 쓰레기와 배설물을 청소 할 수 있도록 궁리했다. 그러나 당초, 펠리시아는 메인 링의 진공관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1970년경에 FNAL에 건설 된 가속기의 진공관>


갑자기 오랫동안 깜깜한 진공 관내를 달리는 것은 힘들었으므로, 12인치(약 30cm) 너비의 튜브에서 튜브 속을 달리는 연습을 실시. 그렇게하여 펠리시아는 서서히 진공 관내를 달리게되었다는. 처음에 펠리시아를 진공 관내에 들리게했을 때, "펠리시아는 조금 피곤한 기색이 보였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했다"라고 벡 씨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펠리시아가 진공 관내를 달리고 난 후, 면봉이 진공 관내를 깨끗하게 먼지와 금속의 길쭉한 조각을 확실하게 모아주었다는 것.


펠리시아가 메인 링의 진공 관내를 달린것에 대해, FNAL의 기록 보관 인 Valerie Higgins 씨는, 펠리시아가 진공 관내를 달리면서 위험에 노출 될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당시 직원에 따르면, 펠리시아가 좋아하는 음식은 닭고기와 간, 생선 대가리, 햄버거 등. 




한편, 엔지니어 Hans Kautzky 씨는 메인 링의 진공관을 청소하기 위해, 열 절연체 디스크를 스테인리스 막대기에 묶어 붙이는 것으로, 700미터나되는 유연한 청소용 케이블을 만들었다. 이를 영구 자석과 함께 설치하여 흰 족제비 없이도 진공 관내의 모든 청소를 할 수있게되었다고 한다.



또한 개발팀은 시스템을 끊지않고, 에너지 레벨을 올리는 데 성공, 당초의 목표를 달성 한 것으로, 펠리시아의 FNAL의 역할은 거의 끝을 맞이하게 된다. FNAL에서 일을 마친 펠리시아는, 1972년 5월 9일에 사망. 부검 결과, 사인은 장관 내에서 농양이 파열 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런 펠리시아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같고, 기록 보관 인의 Higgins 씨는 "흰 족제비를 이용한 청소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찾아낸 것은 한번도 없고, 지금은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Higgins 씨는 펠리시아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 등 당시의 것을 아는 사람에게 들으려고 했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되어 많은 관계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많은 정보는 얻지 못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