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솔즈베리에서 북서쪽으로 13km정도가면 그것이 있다. 스톤헨지는 둥그런 원을 그리면서 거석을 세워놓은 스톤 서클이다.
고고학자들은 스톤 헨지가 기원전 2500년부터 기원전 2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옛날에 도대체 누가 이 거석을 운반하여 스톤 헨지를 만들었을까?
현대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그 수수께끼가 점점 밝혀지고있다.
스톤 헨지를 만든 조상은, 터키에서 영국으로 온 이민자였던 것 같다.
- 영국에 농업 혁명을 일으킨 터키 이민자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에게 해 연안의 현재의 터키에 해당하는 지역으로부터 온 농민들은, 유럽 본토를 횡단하고 잠시 지중해 지역과 뒤섞인 후에 브리튼 섬으로 건너가 거기에 농업을 전했다.
그리고 그들은, 몇 세기 정도, 당시 거기에 살던 원주민 인 사냥 채집자들과 뒤섞여 변해버렸다.
이렇게, 영국 농업 혁명을 전하고, 곧 스톤 헨지를 건설하게 된 사람들은 터키에서 온 이민자였던 것이다.
- 고대 브리튼 섬의 거주자의 유전자를 분석
"Nature : Ecology & Evolution"에 게재 된 연구에서는, 기원전 8500~2500년 전의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DNA를 분석했다.
그 대상이 된 것은, 6명의 신석기 시대의 수렵 채집민(1만 1600~6000년 전)과 47명의 신석기 시대의 농민(6000~4500년 전)이다. 그중에는 영국에서 발견 된 가장 오래된 거의 완전한 인골 인 "체다맨"도 포함되어있다.
<신석기 시대의 브리튼 인 "체다맨">
분석 결과, 대부분의 수렵 채집민은, 에게 해 연안 지역 출신의 사람들을 조상으로하는 농민에 의해 바뀌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들의 유전자 구성은, 현대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 이민이 고대 영국에 남긴 큰 발자취
연구에서 밝혀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기에 유전적인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농업이라는 혁명, 심지어 새로운 매장 습관, 토기, 기념물의 건설 등 문화적인 영향들도 준 것이다.
농업으로의 전환은, 인류 진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이다. 영국에서 그것을 초래 한 것이 대륙에서 이주해온 농민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토착 사냥 채집민이었는지, 이것은 100년 이상 계속되어 온 의문이었다.
다른 유럽의 수렵 채집민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신석기 시대의 브리튼 인은 검은 피부에 파란 눈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자는, 에게 해 출신의 농민이 도래 한 것으로 슬쩍 묻혀 넘어가버렸다. 이 점에서, 토착 민족은 비교적 소수였으며, 새로운 민들에게 즉시 삼켜져 버렸다는 것을 알 수있다.
- 유럽에 있어서 인류의 복잡한 이민 역사
실은 대륙에서의 농민들도 역시, 그 유전적인 변천사에 대해 긴 세월에 걸친 불쾌한 논쟁이 있다.
터키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행은, 지중해와 현재 독일에 해당하는 라인강, 도나우 강 양쪽을 따라 퍼져가는 길에 문화와 유전자를 퍼뜨린 것으로 되어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더 넓은 지역의 이주 및 유전자 전달의 역사가, 한가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상상이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