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TV에서 "백조의 호수"가 방영되는 것에 숨겨진 특별한 의미는?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 작곡가인 표트르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작곡한 발레 작품으로, 현대에도 많은 발레단이 출연하고 있으며, 영화나 문학 작품의 소재로도 반복 이용되고 있다.

그런 "백조의 호수"가 탄생한 러시아에서는, TV에서 "백조의 호수"가 방송되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2022년 3월 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던 러시아 독립 방송국 도시치(Dozhd)가 당국의 압력으로 문을 닫게되었다. 생방송으로 모든 스태프가 사임을 표명한 뒤, 전송화면에는 백조의 호수 흑백영상이 방영됐다. 이날은 "백조의 호수"의 초연이 1877년 3월 4일 열린지 145주년이 되는 날이었지만, 백조의 호수를 방영한 것은 의미가 더 깊다는 것.

"백조의 호수"는 악마의 저주로 백조로 탈바꿈한 공주 오데트와 오데트를 사랑하는 왕자 지크프리트의 슬픈 사랑을 그린 이야기. 차이코프스키가 백조의 호수 작곡을 의뢰받았던 1875년 당시는, 발레 음악의 예술적 가치가 오페라나 교향악보다 낮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차이코프스키는 의뢰주인 볼쇼이 극장의 제시액이 좋았고, 오래전부터 발레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어해 작곡을 맡았다는 것.

1877년 봄 초연은 비평가들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후 1883년까지 볼쇼이 극장의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1884년 이후에는 한동안 재연되지 않았으나, 1893년 차이코프스키가 급서한 것을 계기로, 개최된 다음날인 1894년 2월 추도 연주회에서 "백조의 호수" 2막이 발췌 상영되었다.

이 공연이 평판이 나면서 대본, 안무, 음악의 개정을 거쳐 전체 재연이 실시되었고, 그 후도 많은 안무가가 "백조의 호수"의 개정판을 창작하고 있어, 결말도 비극적인 것부터 해피 엔딩까지,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하고 있다.

 


소련 정치인들은 발레를 러시아의 권위를 높이는 데 이용하고 있으며, 외국의 공식 사절단을 발레에 초청하는 일이 많았다고. 그 중에서도 "백조의 호수"가 외국 사절단 전용으로 상연되는 것은 많았던 것 같고, 공주 오데트를 800회 이상이나 연기한 발레리나의 마이야 프리세츠카야도, 자서전으로 각국의 수뇌가 공연에 방문한것이나, 소련의 대표로서 동반한 니키타 후루쇼프가 몇번이나 "백조의 호수"를 접했다는. 또 소련 최고 지도자였던 요시프 스탈린도 볼쇼이 극장을 자주 찾았으며 1953년 3월 5일 사망하기 직전 인 2월 27일에도 백조의 호수를 관람했다는 것.



덧붙여, 1980년대 소련에서는 TV에서 예정 외의 시간대에 백조의 호수가 방송되고 있는 경우, 뭔가 상을 당할 인물이 죽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 예를 들어, 1982년 레오니드 브레지네프, 1984년 유리 안드로포프, 1985년 콘스탄틴 체르넨코 같은 소련의 거물 정치인이 사망했을 때, TV에서는 벡조의 호수가 방영되었다는 것.

또 1991년 8월 19일에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노린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도, 모든 TV 채널에서 "백조의 호수"가 방송되었다고 한다. "결국 쿠데타는 미수에 그쳤지만, 소련는 흐트러져 붕괴되어 버렸다는...."

 


소련의 방송 사원들이 "차이코프스크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라드니차가 있는 주에 "백조의 호수"를 완성했다"고 하기에 따라 추모 방송을 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백조의 호수는 작곡가가 차이코프스키여서 인지도가 높고 비련의 이야기로 연상되는 멜랑콜릭한 느낌이들어, 국민에게 슬픔을 호소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러시아의 영화관에서는 3월 11일에 "백조의 호수"가 상영될 예정이지만, 이것은 명작 연극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Theatre HD라고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