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가 공격 당했었던 역사적인 8대 사건

역사상 일부 일어났었던, 적국에 의한 미국 본토 공격.


911 테러는 지금까지 미국이 직접적으로 받은 "적대 세력"에 의한 공격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대규모 피해가 나온데다가, 911로 인해 새로운 적대 세력에는 "정체가 없다"라는 것. 당연히 "여기를 무찌르면 된다"라는 적의 본거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21세기의 전쟁이다.


사실, 여태까지 미국은 "적국"에 의한 본토 공격을 받았었지만, 솔직히 그리 대단한 피해는 없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눈에 불을 켜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에 돌입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지금까지 미국은 자국이 외국으로부터 어느정도의 공격을 당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우리나라는 참말로 입에 담지도 못하게 침략을 많이 당했다고 해야....


1. 안보스 노갈레스 싸움



돌발적으로 일어난 미국과 멕시코와의 전투.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연합국측으로 참전하고 있었지만, 당시 멕시코는 중립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원래 양국간에는 험악한 관계에 있었고, 독일 외무 장관이 동맹국으로 참전하도록 멕시코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 노출, 미국은 멕시코에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1918년 8월, 미국과 멕시코 국경 마을 안보스 노갈레스에서 결국 사건이 일어났다.


질 마드리드라는 이름의 멕시코 병사가 큰 짐을 짊어지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도로를 건너려하고 있었다. 미국 측의 군인은, 그를 불러 세워 내용을 보여달라고 경고 했지만, 멕시코 측의 관리 당국은 질에게 "그냥 빨리 건너와!"라고 하면서 고함을 치니, 질도 이에 따라 도로를 서둘러 건너려고 했다. 이에 미군은 "그자리에 서"라고 하면서 총구를 돌렸다.


다음 순간, 어느쪽이 먼저 발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총소리가 울렸고, 이에 미국 멕시코 양군 모두 발포를 시작. 소리를 듣고 멕시코 민병대는 서둘러 라이플을 휴대하고 출동, 미국측도 제10기병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사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안 멕시코 노갈레스 시장이, 백기를 들고 휴전을 요청하려 했지만, 시장은 미군의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사망. 정전하려고 한 시장을 살해 해 버린 것으로 정신이 번쩍 든 양군은 발포를 중지, 군대를 포진 시켰지만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2. 블랙 톰 대폭발



독일 파괴 공작원이 일으킨 폭발 사건.


미국이 제1차 세개 대전에 참전하기 전 1916년, 뉴욕 항구에 있는 블랙 톰 섬에서는 주로 연합국, 특히 영국을 위한 군수 물자를 실어나르고 있었다.


7월 30일 새벽, 블랙 톰 섬에서 대폭발이 발생. 145킬로미터 이내의 사람이라면 그 폭발음이 들렸을 정도의 대폭발이었다. 그 진동으로 규모 5.5 정도의 흔들림을 일으켜 튄 파편들이 주변 건물에 피해를 주었다. 그 피해액은 1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당초 이 폭발 사고 또는 고의적 인 것인지는 알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지만, 후에 조사에서 당시 주미 독일 대사 요한 폰 베룬슈톨이 위조 여권을 발급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독일 당국에 의해 파괴 공작원이 침투, 블랙 톰 섬에서 일자리를 얻어 사건을 일으킨 것이었다는.




3. 독일군 U 보트의 오를레앙 공격



한 여름의 바다를 덮친 것은 상어가 아니라 독일군 U 보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 잠수함 U보트는 통상 파괴뿐만 아니라 전함과 수송선도 가차없이 공격을 가해 연합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었다.


1918년 7월, 그런 U 보트가 매사추세츠 주 오를레앙 근처의 바다에 갑자기 나타났다. 떠오른 U 보트는 전함을 공격하여 근처의 예인선 1척을 침몰시켰다. 


긴급 요청을 받은 해군 항공기가 출동, 상공에서 폭탄을 U 보트를 겨냥해 투하, U 보트는 물밑으로 잠수하여 도망. 결국 U 보트를 침몰시키지는 못했지만, 이 싸움은 미국의 항공기가 잠수함을 목표로 공격 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는.


4. 일본군 잠수함의 엘우드 정유소 공격



미국 국민을 공포에 빠뜨렸던 급습 공격.


진주만 공격으로부터 3개월 후의 1942년 2월 23일 밤, 일본군 잠수함 "伊17"은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바라 근교 엘우드 정유소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의 주된 목적은, 예기치 못한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함으로써 미국 국민을 심리적으로 흔들어, 미국 여론을 돌리려 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伊17"은 정유소를 향해 20발의 포탄을 발사했지만, 일부 시설은 파괴되었는데 그렇게 큰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는. 그러나 이 공격으로 캘리포니아와 로스 엔젤레스, 샌디에이고 등에서는 등화관제를 실시하고, 시민은 언제 또 공격 해올지 모르는 일본군 때문에 상당히 떨었다는....


5. 일본군 잠수함의 포트 스티븐스 공격



일본군 잠수함에 의한 또다른 습격


엘우드 정유소 공격으로부터 4개월 후인 6월 21일, "伊25" 잠수함이 포트 스티븐 육군 기지를 공격했다. 이곳은 남북 전쟁 시대에 콜럼비아 강 어귀에 지어진 요새.


伊25는 요새를 향해 포격을 가했지만, 방어하는 요새측이 조명을 모두 오프하는 바람에 伊25의 포격은 정확성이 부족, 피해는 거의 줄 수 없는 정도였다는.


역으로 미군의 연습기가 출동하여 伊25를 공격하려 하자....이 작전은 중단 곧바로 철수했다고 한다.


일본군에 의한 거듭되는 미국 본토 공격으로 미국 시민들은 또 다시 공포에 떨었다는.


6. Lookout 공습



최초의 미국 본토 공습.


미국이 교전 상태에 있는 적국의 항공기에 의한 공습을 받은 것은 "Lookout"이 유일하다.


포트 스티븐을 공격 한 잠수함 "伊25"는 요코스카 기지 귀환 후 다시 미국 서해안에 가서 탑재되어 있던 영식 소형 수상 정찰기에 의한 미국 본토 공습을 감행했다.


이 공습을 담당 한 조종사는 후지타 노부오라는 일본군으로 전략은 소이탄을 브루킹스에 가까운 숲에 투하하여 산불을 일으키는 것. 전략은 두 번 실행되었고, 후지타는 무사히 작전을 마치고 伊25로 귀환했다.


이 작전은 군사 기지 및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이 미국 본토에 침투하여 뭔가 화려한 것을 시도함으로써, 미국 여론의 사기 저하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7. 풍선 폭탄



풍선 폭탄은 1944년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실시 된 미국 본토 공격용 폭탄으로, 태평양 상공을 흐르는 "제트 기류"에 폭탄이 들어있는 풍선을 날려 미국 본토까지 운반하여 폭발시켜, 산불등의 피해를 일으키기 위해 시도된 전략이다.


실제로 수천 개 날린 것 중에 수백 개의 폭탄이 미국 본토에 도착, 오리건 주에서 소풍왔던 그룹이 실수로 폭탄을 터뜨려, 아이들 5명과 여성 1명이 사망했다는.


이 이상한 물체를 미국 당국은 일본에서 발사 된 것이라고 눈치챘지만, 당시 미국은 제트 기류의 존재를 몰랐었고, 어떻게해서 일본에서 풍선이 이렇게 대량으로 날아왔는지 이해를 못했었다는.


미국 당국은 국민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여, 철저하게 이러한 사실을 숨겨 자세한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8. 콜럼버스 싸움



멕시코 산적에 의한 국경 마을 습격 사건.


멕시코 혁명 영웅으로 치와와 주의 산적 판초비야는....


정적 웨루사를 함께 잡은 옛 동지 카란이 대통령에 취임해버렸고, 숙적 미국이 카란을 승인한 것으로부터 화가 나 있었던 그는, 종종 미국 측에 침입해 도시를 습격하거나 철도를 습격하는 등 무법 행위를 일삼았다.


판초비야의 미국 공습 중 최대의 것이 1916년 3월 콜럼버스의 싸움.


판초비야는 약 400기의 기마대로 콜럼버스 마을로 습격, 마을은 이미 습격을 예측하고 기관총으루 무장한 약 350명의 방위대가 무장하고 있었으며, 판초비야의 기마대는 100명이나 되는 사망자를 내고 도망. 콜럼버스 측은 18명이 사망했을 뿐.


그러나 방화와 난동으로 인해 콜럼버스 마을은 거의 초토화되었고, 피해는 엄청났었다는.


미국 정부는 항공기까지 동원하여 판초비야를 체포하려고 했지만, 결국 잡히지 않았고, 멕시코 정부에 판초비야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멕시코는 끝끝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