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냉전 시절, KGB가 노렸던 6가지 극비 작전

미국의 CIA처럼, 소련 연방(지금은 러시아)에는 국가 보안위원회(KGB)라는 간첩 조직이 전세계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 러시아 대통령 인 푸틴도 한때 KGB 요원이었다.


이렇게 알려진 KGB의 정보는 바실리 미토로힝이라고하는 한 남자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전 KGB 간부였던 미토로힝은 25,000페이지의 극비 자료를 손에넣고 영국으로 망명. 아래 소개하는 것은 미토로힝의 문서에서 밝혀진 KGB가 수행해왔던 작전의 일부분이다.


6. 요시프 브로즈 티토 암살 계획



유고 슬라비아의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 자신은 공산주의자였지만, 신기 할 정도로 소련, 특히 스탈린의 분노를 사고있다. 유고 슬라비아의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도 소련도 거리를 둔 것이 원인 인것 같다.


이렇게 스탈린은 KGB의 전신 인 MGB에 티토 암살을 명령했다. 이 임무에 종사 한 것은 과거 스탈린의 정적, 레프 트로츠키를 암살 한 소련 최고의 에이전트였다. 그러나 티토는 기적적으로 암살을 피했다고.


암살에 실패 한 MGB는 더 교활한 계획을 세운다. 특별히 개발 한 치명적인 세균을 티토가 참석하는 외교 회의에서 뿌리기로 한 것이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에이전트 이외는 모두 죽을 것이다.


또한 독가스를 살포하는 보석 상자도 개발했다. 보석 상자를 선물로 티토에게 주고, 그것을 여는 순간에 뿜어내는 독가스에 의해 죽이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 독가스 암살 계획도 실시되지 않았다. 결국 티토는 스탈린보다 30년 가까이 장수했고, 1980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미국의 인프라 파괴 작전



1959년 ~ 1972년, 뉴욕의 전력 공급을 차단 하려고 했었던 KGB는 발전소, 댐, 송유관 등 인프라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이렇게 최적의 공격 목표가 정해졌고, 펜실베니아 해리스 버그 근교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전력 시스템의 공격 준비를 갖추었다.


목표는 몬타나의 대형 수력 발전 댐, 헝그리, 호스, 댐과 플랫 헤드 댐이었다. 이 두 댐을 파괴해버리면, 미국 지역의 전력 공급이 끊겨 버린다. 우선 KGB는, 헝그리, 호스 댐 산의 경사면에 있는 고압 전선 철탑을 파괴하려고 계획. 이것이 파괴되면 복구는 어렵고, 장기간에 걸쳐 댐에서 송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어 댐 통제실을 점거하고 파괴....


또한 KGB는 미국의 휘발유 공급의 핵심 인 캐나다-미국 간 송유관과 캐나다 정유 파괴 등도 노리고 있었다.


4. 인질 사건의 보복



1985년 레바논에서 소련의 외교관이 이슬람 극단 주의자들에 의해 납치. 보도에 따르면, 극단의 목적은 레바논 내전을 획책하는 시리아에 대해 소련의 지원을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무장 단체는 총을 머리에 들이댄 인질의 사진을 언론에 보내 소련이 지원하는 시리아 군의 레바논 북부에 대한 공격 중단을 요구.


당초, 소련측은 테러리스트와의 협상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소련 측으로부터 시리아 군을 철수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무장단체들은 2일 후 인질 1명을 처형했다.


이에 따라 소련측은 협상을 포기하고, KGB 개입이 시작. KGB는 사건의 배후에 이슬람 무장 조직 헤즈불라가 있다고 판단, 보복으로 헤즈불라 지도자의 가족을 납치. 그리고 인질의 신체를 절단하여 과격파에 보내줬다.




그 후, KGB는 헤즈불라의 지도자를 향해 다른 가족의 거주지도 파악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인질이되어 있던 소련 외교관 3명은 그대로 석방되었다는...


3. 도촬에 의한 협박



소련이 공산권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 국가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였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은 인도네시아를 동맹국으로 하려고 한 것. 그래서 인도네시아가 배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KGB는 수카르노 대통령의 약점을 잡으려 획책했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KGB는 그것으로 유인하려고 했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KGB는 그가 좋아할것 같은 젊은 여성을 스튜어디스로 비행기에 태워 대통령의 관심을 끌었다. 결정타로 체류중인 호텔 방으로 그녀들을 보냈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달콤한 함정에 감쪽같이 속아, 그 공간이 비디오에 담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건은 KGB가 의도한대로 되지 않았다. KGB가 대통령의 비디오를 보내주고 협박하려고 하니, 오히려 그쪽에서는 복사를 더 해달라고 요구했대나 어쨌대나....^^;


2. 사상 최대의 감시 임무, RYAN 작전



1980년대 냉전은 다시 긴장의 정도를 증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소련 최고 지도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미국은 전쟁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핵무기에 의한 기습 작전을 실시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소련은, KGB에 RYAN 작전이라는 사상 최대의 감시 임무를 명령.


RYAN 작전의 목적은 미국의 핵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인공위성 COSMOS가 이용되게 되었다. KGB의 목적은 미국의 군사 기지를 24시간 모니터링하고, 핵무기가 발사되는 낌새가 있으면 즉시 본국에 알리는 것이었다.


작전은 미국 내에있는 모든 레이더가 감시되고 있었다. 미국 시민의 행동이나 국외로 나가는 미군도 감시되었다. 또한 NATO도 감시 대상이되어, 미국과 유럽 사잉의 전화도 도청했다.


원격 모니터링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즉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스파이 망도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대대적인 전략은 막대한 비용이 늘어나 작전 개시부터 불과 3년 후인 1984년에 축소되게 되었다.


1. 테러리스트에 자금 지원



야세르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에 취임, 그는 KGB와 동맹을 맺었다, 이후 KGB는 PLO의 군사 훈련과 무기를 지원.


그동안 PLO은 수많은 테러 행위를 실시해왔다. 1969년만해도 세계에서 82번이나 납치를 반복했다. 이에 대해 전 KGB 제일 총국장 알렉산더 사하로프스키는 납치를 고안 한 것은 자신이라고 발언.


또한 KGB는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 전선(PLPF)의 자금 지원도 실시했다. 덧붙여서, 수많은 납치를 지휘 한 전 PLPF 리더의 와디 하닷도는 KGB요원이었음이 판명되었다.


1972년에는 아일랜드 공화국 군(IRA)에 대량의 무기를 공여하고 있었다. 소련과 KGB가 IRA에 주목 한 이유중 하나는,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를 공산권으로 편입하기 쉬울 것이라고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