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죽음의 고속도로

25년 전, 전쟁 사상 최악의 대학살의 하나로 알려져있는 이곳은, 쿠웨이트 마을에서 32km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이라크 고속도로 80에서 일어난 기습 공격. 다국적군이 몇 킬로미터의 길이에 걸쳐 정체로 서있던 차량들을 향해, 군민 관계없이 폭격 한 이 도로는 후에 "죽음의 고속도로"로 불렸다.


걸프 전쟁중인 1991년 2월 26일 ~ 27일(시리아 2월 27일 오전 0시)에 걸쳐 밤, 임시 휴전으로 많은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이 바그다드를 향해 이동중이었다. 그런데 조지 HW 부시(아버지) 대통령이 철수중인 이라크 군을 철저하게 청소하라고 미군에게 명령한 것이다.



다국적군 전투기가 비무장 차량을 습격하고, 시작과 끝 부분을 파괴하여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한 다음, 장시간에 걸쳐 하늘에서 공격을 반복. 대학살이 끝났을 때는 모든것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는데, 약 2,000여대의 차량과 수만 명의 이라크 병사의 참혹 한 시신만이 즐비.....




이후 이곳은 "죽음의 고속도로"로 알려지게 되었다. 바스라에 이은 또 다른 고속도로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었고, 이러한 도로의 참상은 걸프전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고속도로 80에 방치 된 파괴 된 차량(1991년 4월 18일)>


이러한 참상이 벌어지기 전날, 바그다드는 이라크 외무 장관이 러시아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여, 유엔의 의결 안에 따라 모든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그런데 부시는 이를 믿지않고, 이라크 군이 철수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대답, 그들은 여전히 싸움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다음날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스스로 라디오를 통해 두 고속도로에서 철수를 시작할 것이고, 이날 중 완료될 것으로 전했다. 그래도 부시는 후세인의 성명을 날조라고 단정했다.


이라크의 항복과 전장에서의 철수를 받아들이기는 커녕, 미국에게 불리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부시와 미군은 그저 많은 이라크인을 죽이는 폭거에 나온 것이다.



폭격은 자정 가까이에 시작, 먼저 미군과 캐나다 군의 전투기가 이라크 군의 자동차 라인의 선두와 마지막 꼬리를 공격, 대열이 진행될 수 없게 해놓고 집중 포격을 반복했다. 미 중앙 군의 최고 사령관은 부시 진영으로 부터 아무도 쿠웨이트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속도로에서 도망쳐 나온 차량은 한 대도 남기지 않고 집요하게 쫓아 파괴되었다. 항복하고 비무장 상태인 이라크 병사들조차 공격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트럭의 운전석은 격렬한 폭격으로 땅에 박혀 있었다. 운전 기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큰 전차는 완전히 파괴 녹아버려 단순한 칩으로 변해있었다"라고 레바논 계 미국인 저널리스트, 조이스 체디 씨는 설명했다.


"철수하고 있는 이라크 군 병사들을 학살 한 것은 민간인 및 전투 행위에서 이탈 한 전투원고 포로를 보호하기 위해 맺어진 1949년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 이라크 군은 미군으로부터 쫓기던 것도 아니었고, 다시 무장하기 위해 퇴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철수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던 것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한 병사를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전쟁 범죄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추악한 것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콤 라가체는 쓰고 있다. 이것이 "뉴스 데이(뉴욕 신문)"에 폭로되었을 때, 모두가 놀랐다. 미국 상하 양원 군사위원회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 공격의 세부 사항을 위원회에 비밀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디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미 사령관은 이라크 군은 자발적으로 철수 한 것이 아니라, 다국적군에 의해 전장에서 쫓겨나고 있었다고. 4년 후, 노먼 슈워츠 코프 장군은 죽음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일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쿠웨이트에서 북쪽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폭격 한 첫 번째 이유는, 고속도로에 대량의 군장비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지휘관, 이라크 군 장비를 최대한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집단은 일반 시민이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쿠웨이트 시내에서 폭행과 약탈을 반복했었던 흉악범 및 살인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체포되기 전에 국외로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