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 캐릭터는 뭔가 멋지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뭔가 외눈 캐킥터라고 하면 신비한 능력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전투의 지휘관과 고고한 천재 캐릭터나 전장에서 활약하는 용사들. 종반의 스토리와 라스트 보스와 관계있는 어떤 과거를 짊어지고 있거나, 억제의 효과가 아닌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해제되기도 한다.
외눈 인 것으로 유능하다라는 인과 관계는 없지만, 확실히 우리들의 뇌에 영향을 준다.
1. 이극용(중국)
황소의 난을 진압한 원조 "애꾸눈"
돌궐(突厥)의 사타족(沙陀族) 출신으로 후당 이존욱(李存鄭)의 아버지이다.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조(唐朝)의 부름을 받고 사타족을 인솔하고 황소군과 싸워 장안(長安)을 탈환하였다. 그 공로로 883년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에 임명되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애꾸눈"이라고 불려졌었다.
2. 모세 다안(이스라엘)
유대인 국가를 위해 싸운 "이스라엘 애꾸눈"
모세 다안은 영국 지배하의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은 불법 군사 조직, 하가나에 입대하여 아랍인과의 싸움에 몰두하게된다.
하가나가 불법화되어 다안도 영국군에 체포되지만, 1941년 2월에 풀려나 추축군과 싸우기 위해 재편성된 신생 하가나에 참가.
영국군, 자유 프랑스군과 공동으로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비시 프랑스군과 싸워 대활약을 보였다. 전투 중에 다안은 왼쪽 눈에 총알을 맞았는데, 의안도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였기 때문에, 이후 그는 안대를 하였고, 그것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발발한 제1차 중동 전쟁에서, 요르단 계곡의 방위에서 활약. 1935년 참모 총장에 취임하여, 제2차 중동 전쟁에서 지휘를 맡아 초기 이스라엘 군을 지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주요 인물 중에서도, 특히 강경파로 아랍과의 절충을 거부. 1949년~1950년에 실시 된 트랜스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과의 협상에서 다안은 요르단 측에서 제시된 그 어떠한 타협도 거부. 모든 결정은 전투로 결정되며, 승리한다는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3. 레오 메이저(캐나다)
레오 메이저는 프랑스계 캐나다의 군인.
1940년 19세에 캐나다 군에 입대, 1941년 서부 전선에 합류.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종군했다. 노르망디에서의 전투에서, 그는 4명의 독일군을 살해하자민, 수류탄 폭발로 한쪽 눈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정찰대와 저격 부대에서 종군을 계속.
1945년 4월 13일, 네덜란드 동부 즈워레 탈환 전 한밤중에 단독으로, 마을을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는 기관총과 수류탄을 활용하여, 독일군에게 "캐나다 군의 습격"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고, 또한 8~10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4명의 나치 장교를 살해. 아수라장이 된 독일군을 즈워레에서 철수하게 만들었다.
이 활약으로 그는 특별 공로 훈장(distinguished Conduct Medal)을 수여.
4. 얀 지 슈카(1374~1424, 체코)
후스 전쟁의 영웅적인 지도자.
얀 지 슈카는 체코 민족의 발생을 말할 때, 얀 후스와 함께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용병으로 폴란드 왕을 섬기고 있던 지 슈카는, 1410년경부터 종교 개혁자 얀 후스의 가르침에 공명. 후스가 살해되자, 그 의지를 이어 받아 추종자를 모아 카톨릭을 공격. 후스 전쟁에서 지도자로 활약.
그를 지지하기 위해 모인 후스파의 주민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굳은 결속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지 슈카의 천재적인 지휘 아래 비교할 수 없는 힘을 발휘. 지 슈카와 후스파 주민은 신성 로마 제국 군대와 십자군을 여러번 혼란에 빠뜨렸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 슈카는 어린 시절에 상처로 오른쪽 눈을 잃고 안대를 하고 있었는데 "외눈의 지 슈카"라고 불렸다. 지 슈카의 사후에도 그의 뜻을 이어받아, 전쟁은 계속되었고 그 군사적 성공과 결속이 체코 민족과 체코 국가의 기반이 되었다는.
5. 얀 시로뷔 (1888~1970, 체코 슬로바키아)
얀 시로뷔는 190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에 입대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지만, 러시아 군의 포로가 되어 나중에 러시아 군의 체코 슬로바키아 군단의 멤버가 되었다.
1917년 7월에 전투중에 오른쪽 눈을 잃고도 바로 전투에 복귀, 4월부터 체코 군단 제2 라이플 연대의 대장이 되었다. 러시아가 대전에서 철수하여, 시로뷔가 이끄는 체코 슬로바키아 군단은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고국의로위 귀환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동부는 정예 독일군이 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를 넘어 태평양-대서양을 넘어 서부 전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처음에는 볼셰비키도 이에 동참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는 적군에 반발. 구 러시아 정부군의 백군과 함께 적군과 싸움을 했다.
덧붙여서,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은 그들의 해방을 빌미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1920년 9월에 체코 슬로바키아로 귀국. 1926년에 국방부 군 참모 총장을 지냈고, 1938년 9월 총리에 취임. 나치 독일이 체코 슬로바키아의 즈데덴 합병 요구를 구한 이른바 "뮌헨 회담"에서 히틀러의 요구를 수락했다.
6. 호레이쇼 넬슨(영국)
영국 해군 최대의 영웅.
넬슨 제독은 그 유명한 영국 해군제독으로,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스페인 해군을 무찌른 확실히 세계사의 영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1793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 지중해 방면 함대에서 근무, 이듬해 칼비 공략전 종군 시에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고 외눈이 된다. 같은 해에, 이번 전투에서 오른팔 부상으로 절단. 외눈과 외팔이 되지만, 그의 활약은 여기서부터 시작.
넬슨은 1798년 나일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을 격퇴하고 제해권을 확보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의 야망을 꺾는데 성공. 거침없이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1805년 나폴레옹은 영국 본토 침공을 계획, 41 프랑스, 스페인 함대를 보내고, 본토 방위를 담당한 영국 해군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투를 벌인다.
숫자로는 절대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넬슨은 여기에서 두열 종진으로 적의 함대와 접근전을 시도. 당시 함대끼지 병렬로 나란히 전투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넬슨은 적의 배 현측으로 들어가 집중 포화를 퍼붓는다는 위험천만한 작전을 실행 한 것이었다.
이 전략은 멋지게 성공, 프랑스 스페인 함대는 전멸. 영국군의 대승리였지만, 프랑스 군함쪽에서의 저격으로 현장에서 전사.
압도적인 승리와 극적인 죽음은 그를 전설적인 존재로 만들었는데,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 넬슨 제독은 죽을 때도 이순신 장군처럼.
7. 한니발 바르카(카르타고)
동서고금 가장 위대한 "외눈 군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외눈의 군인이라면 한니발 밖에 없는 것 같다.
26세에 카르타고 군의 사령관이 된 한니발은 카르타고 병사와 누미디아 병사, 스페인 병, 코끼리 37마리를 거느리고 겨울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침입. 갑작스런 습격으로 혼비백산 한 로마군을 무찔러, 북부 이탈리아에서 남 이탈리아로 남하를 시작.
트라시메네 호수 전투에서는 호반과 산 사이의 좁은 지대를 진군하는 로마군에 기습 공격을 퍼부어 2명의 로마 집정관을 살해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대신 비위생적인 습지에 장시간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고 외눈이 되어버렸다.
그 후, 가장 유명한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 군인 5만~7만을 무찌른 압도적인 승리로 그 이름을 세계 만방에 떨치게 된다.
그러나 파비우스의 지구전 전략에 의한 봉쇄 전략으로 점차 기력이 떨어지고, 시키피오에 의해 바르카 가문의 본거리 이베리아 반도가 공격을 당해, 카르타고 본국에서는 한니발을 급히 소환.
그리하여 카르타고 본국에서 벌어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에 패배. 결국 한니발은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지만, 아쉽게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