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발명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10명의 위대한 발명가

위대한 발명가 중에서는, 자신이 발명해놓고도 그것에 의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은 어느정도 있는 것 같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고나 할까....


스스로 발명, 개발하거나 발견 한 것에 의해 목숨을 잃은 위대한 발명가 및 과학자를 생각해보자.


◆ 토머스 미즐리(1889~1944)


유연 가솔린을 개발하고, 프레온을 발견한 토머스 미즐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죽음을 초래한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자신도 유연 가솔린에 의한 납중독이 되어, 51살 때 소아마비에 감염된 것으로 병상에 눕게되었다. 그래도 발명 영혼에 지칠 줄 몰랐던 미저리는, 밧줄과 도르래를 사용하여 병상에서 일어나기 위한 장치를 고안,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55세 때 이 장치가 목에 얽혀 버려 질식사하게 된다.


◆ 오토 릴리엔탈(1848~1896)


행글라이더를 발명한 항공의 개척자로 알려진 릴리엔탈은 1891년부터 1896년에 걸쳐서 직접 제작 한 행글라이더로 무려 2500번이나 비행 시험을 실시했다. 그렇지만, 1896년 8월 9일, 시험 비행 중에 바람에 의해 17m 높이에서 추락, 척추를 다쳐 그 다음날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최후의 말은 "작은 희생은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다"라는 왠지 의미심장한 말로, 자신의 죽음을 항공 시대의 개막을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 프란츠 라이켈트(1879~1912)


현대의 낙하산과 거의 같은 워리의 "낙하산 코트"를 발명 한 재봉사겸 발명가의 라이켈트는, 발명의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관중과 취재진 앞에서 당시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대 고도였던, 에펠탑에서 뛰어 내리는 시범을 실시. 그렇지만,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았고 지상에 추락하여 사망.


◆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1873~1928)


러시아의 유명한 의사이자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이며 혁명가이며 SF 소설까지 써고 있었다는 보그다노프는, 장년기에 갑자기 "수혈에 의해 인간은 젊어지는 것이 가능, 불로 불사도 꿈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11회 수혈 실험을 실시. "시력도 회복했고,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게 되었다"라고 반응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핵 및 말라리아에 감염 된 학생의 수혈로 인해 1928년 사망하고 말았다.




◆ 윌리엄 불럭(1813~1867)


1863년에 현재의 신문용 윤전기의 원형이 된 1시간에 1만장을 인쇄할 수 있는 윤전 인쇄기를 발명 한 월리엄 불럭. 1867년 신형 인쇄기를 개발했지만, 그 설치가 잘되지 않아 초조하게 운전하던 도중 윤전기 벨트 풀리 안으로 다리가 말려들어갔다고 한다. 그 부상으로 인해 불럭의 다리는 괴저를 일으켜 4주 후 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그 도중에 사망했다.


◆ 코퍼 핍스 콜스(1819-1870)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이었던 19세기 영국 해군에 11살 때 입대하여 크림 전쟁을 경험한 콜스는, 해상에서 타간 로크 마을을 포격하기 위해 뗏목 위에 싣는 회전 포탑을 설계하고, 전후 이 회전 포탑 특허를 취득한다. 해군 대령까지 승진, 선박의 설계를 맡게되어, Turret ship라는 지금까지처럼 배 옆에서 대포가 튀어나오는 타입이 아니라 갑판 위에 회전 포탑을 얹은 새로운 유형의 군함을 고안했다. 그러나 수면 위에 설치 한 디자인은 균형이 나빴고, 1870년에 "HMS Captain"은 전복, 500명 이상의 승무원이 사망했을 때, 콜스도 승무원으로 한 사람으로 사망.


◆ 헨리 윈스탠리(1644~1703)


수많은 배가 좌초해 영국 최고의 해상의 험한 Eddystone Rocks에서 자신도 2척의 배를 잃은 건축가이며 기술자 인 윈스탠리는, 사재를 털어 이 등대(Eddystone Lighthouse)를 설계, 건설했다. 1696년에 착공하여 1698년 11월에 불이 켜졌던 팔각 기둥의 목조 등대는, 이후 12 기둥의 베이스 타어에 여덞 기둥이 실린 모양으로 개수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리노베이션 공사 마무리 작업중 인 1703년 11월 말 역사에 남을 "1703년 대 폭풍이 몰려왔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등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작업을 위해 숙식을 하고 있었던 윈스탠리 씨 자신도 등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 J.G 패리 톰슨(1884~1927)


웨일스 인으로 모터 레이서이자 엔지니어였던 J.G 패리 톰슨은 스스로 개발한 Babs라는 차에 1926년 4월에 시속 273.6km라는 속도로 기록달성한다. 1927년 2월에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칭호를 말콤 캠벨에게 빼앗긴 후, 1927년 3월 3일에 웨일즈 해안 Pending Sands에서, 다시 세계 최고에 도전 했을 때 엔진과 구동 바퀴를 연결하는 체인 1개가 시속 270km로 잘려, 머리에 외상을 입혀 현장에서 즉사해버렸다는.




◆ 도널드 캠벨(1921~1967)


위의 J.G 패리 톰슨의 라이벌 말콤 캠벨의 아들 인 도널드는 아버지처럼 스피드에 매료되어, 자동차와 모터 보트 레이서로 활약하고,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8개의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 1964년에 스스로 수립한 수상 최고 기록(시속 444.7km)을 깨는 시속 300마일(480km) 돌파를 목표로 새롭게 개발 한 보다 가볍고 고출력 엔진으로 무장 한 Bluebird K7으로 1967년 기록에 도전, 첫번째의  시도로 평균 시속 478.9km, 피크 시속 507km를 기록 한 후, 예정 급유 한 후 첫번째의 항적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성급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일까...즉시 도전하게 된다. 거친 수면과 급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트가 가벼웠던 것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여튼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1마일 코스의 종반 부근에서 보트는 수면에서 45도 높이로 날아올라 공중 제비 후 뱃머리로 수면에 떨어져버렸다. 이 때 시속 510km 이상의 속도가 나와있었다고하는데, 도널드 캠벨은 여기에서 즉사해버렸다는.


◆ 마리 퀴리(1867~1934)


폴란드 출신으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발견 한 원소 플로늄에 족구의 이름을 딴 마리 퀴리. 우리에게는 퀴리 부인으로 더 유명한 과학자. 플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고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서 2개의 노벨상(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수상한 퀴리 부인은 연구중이었던 피폭이 원인으로 재생 불량성 빈혈로 1934년에 사망했다. 미지의 물질과 현상은 그 위험성도 불명이고, 개척자들은 무방비로 그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반복되는 패턴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