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탈리아군이 약했던 이유

이탈리아의 식생활에 대한 열정은 세계 어느나라보다 강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의욕이 있었던 사람은 단 한사람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솔리니...그 이외의 군 상층부의 많은 사람들도 의욕이 하나도 없었고, 군비도 빈약했고, 별로 싸우지도 않고 무조건 항복하고 만다.


다른 나라처럼 끝까지 항전하고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았다는....예전의 로마제국의 모습은 어디로?


- 이탈리아 군

대장이 좀 뚱뚱한 것 같은데...괜찮을까?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스스로 선전포고를 했지만, 완전히 연전연패. 그리고 빠르게 항복. 우스개 소리로 군대의 비축 탄약보다 와인이 더 많았었다는....


이탈리아 군복을 입고있는 기상 캐스터

이탈리아에서는 공군이 위성을 관할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일기예보도 군인이 한다고...


남자들은 모두 명랑 쾌할하고, 여자들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삶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전체가 또한 한없이 밝고 아름답다.


이탈리아는 식사에 대한 집념이 강해서, 군대 전투식량도 아주 고급진것을 먹었다는 사실. 


유럽 국민들에게 이탈리아에 대한 인식은...독일은 근면하고 신뢰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는 태만하거나 붉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 해는 이탈리아에 접하고 있지만, "아드리아 해의 진주" 드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령이다.




주력이었던 기관총의 성능도 허접

결함 투성이의 M30 기관총. 주력 기관총이었는데, 거의 쓸모가 없었다....


주력 기관총으로 채용 된 M30이 "이탈리아 병사는 다른 기관총이 있으면 그것을 선택"할 정도. 장점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만큼 성능이 나빴고, 이탈리아 병은 여러 장비를 선택할 여지가 있을 경우는 망설이지 않고 다른 무기를 선택.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 이탈리아는 소련 다음으로 국유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혼란으로 국력이 크게 쇠퇴하고 있었고, 기술력도 저하.


군수 장관 팹 구루사는 "빨라도 1949년까지 대규모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무솔리니에 통보하고, 군부의 상층부도 대부분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전 의지도 없었음. 즉시 항복하는 이탈리아군. 아프기전에 항복하고, 옷이 더러워지기 전에 항복했다는 말도 있었다.


군 통수권을 가진 무솔리니가 군 상층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 


갑작스런 참전으로 군으로서는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 먼저 선전포고를 하고서 몰래 행군 준비가 이루어졌는데, 공군력으로 말하면 당시 일본에서는 68,000대의 전투기가 있었지만, 이탈리아는 그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고.


포로 친화적인 이탈리아 인

이탈리아 인은 포로의 식사 등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배려했다는. 그래서인지, 추축군으로서는 포로의 사망률이 2%이하로 제네바 협약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포로들도 상당히 온순

자..도망하는 연습이다.

이탈리아 군의 행군은 구보로 도망 연습.


이탈리아 군의 항복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포로 수용소의 문은 필요없을 정도로 점잖았다고 전해진다.


점령지 등에서 너무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약탈과 난폭한 행동을 일삼으면 그쪽 지역의 여성으로 부터 미움을 산다고 해서 매우 신사적이고 온화했다는...


오로지 무솔리니 혼자서 의욕이 넘쳤지만.. 전후에 바로 처형되었다.

1945년 4월 28일, 무솔리니의 정부 쿠라라 페타치와 함께 파르티장에게 붙잡혀 즉시 처형되었고, 그 시신이 민중 앞에 전시되었다. 히틀러 자살 불과 이틀전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