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조국 역사상 가장 참담한 패배를 기록한 과달카날 해전

과달카날은 솔로몬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2차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연합군과 일본군이 피터지게 싸웠던 전장이었는데....여기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고 전해지는 섬이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다가 갑자기 호우가 쏟아지는 기상조건으로, 모험 소설로 유명한 잭 런던이 남긴 말이, 대충 이 섬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가 한 말은 "내가 왕이라면 역적들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로 이쪽 솔로몬 군도로 유배를 명하리라..."라고 했다는.


그 정도로 악명 높았던 섬....



1942년 초여름, 미군은 일본의 무전을 도청하여, 이쪽 과달카날에 활주로를 건설할 것이라는 첩보를 접수. 이 무전을 계기로 미국은 남태평양에서의 교두보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점령 계획을 세운다.




일본은 이쪽 과달카날을 거점으로 뉴헤브리지스, 피지, 사모아, 뉴칼레도니아의 미군 기지를 공격하고 미군과 호주간의 교역을 무너뜨릴려고 과달카날에 비행장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미군은 이쪽 과달카날을 점령하지 못하면, 일본군이 남태평양 전선에서 세력을 확장할 것이라 생각.



1942년 7월 23일....

남태평양 전선을 견고히 지켜야만 한다고 동의. 일본군의 진출을 막고 솔로몬 군도를 탈환해야 겠다는 미국은 서서히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이 작전명은 "감시탑" 작전이라 부른다...


작전의 실질적인 지휘권은 로버트 L. 고믈리 중장이 맡았고, 공격 전술은 프랭크 잭 플래처 중장에게 맡겼고, 상륙 작전을 감행 할 미 해병 제1사단의 알렉산더 반데그리프트 소장이 맡았다. 그리고 리치먼드 켈리 터너 소장이 해군 지원부대를 지휘.



한편, 일본군은 미군의 이러한 공격 계획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계속적인 승리로 자만감에 가득 차 있었고, 연합군이 강력한 반항을 할지 모르고 있었다.


42년 8월 7일, 날이 밝자 일본군은 과달카날 주변을 연합군들이 에워싸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곧이어 함포 사격으로 일본군 진지를 강타. 


끈질기게 저항하는 일본군은 서서히 무너지고, 미군은 144명이 전사, 194명이 부상을 입었고, 일본군의 경우 800여명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700여명이 전사, 23명이 생포당했고, 단 3명만이 투항했다.



어쨌든 일본군의 심한 저항이 있었지만, 과달카날 탈환은 아주 손쉽게 진행되었다. 이쪽에 주둔했었던 일본군은 대부분이 공병 부대였고, 우리나라 노역자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이렇게 쉽게 과달카날을 탈환했지만, 섬을 지키는데에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일본군은 과달카날은 잃었지만, 그 주변 해역은 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일본군은 전함 8척을 이끌고 미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야간에 이동. 하지만, 해역 주변에 숨어있던 미군 잠수함이 이를 포착하고 상부에 보고하는데....




일본의 행운이었을까? 보고를 받았지만, 미군 지휘부는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대참패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초계기를 띄워 과달카날 상황을 보고 오라고도 했는데....초계기가 이륙하지도 않았었다는.



미군의 폭격기들도 일본 전함을 시야에서 놓쳐버리고...과달카날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합군 전함은 아무것도 모른채 다가올 비극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술 더 떠....플래처 중장이 항공기 손실과 항공모함의 피해를 우려해 함대를 작전구역에서 후퇴 시켰다는 것이다. 더구나 1400명을 태운 미 해병대원과 물자를 실은 수송선까지 후퇴.


연합군 함대는 과달카날에 접근하는 일본 전함을 보고서야 사태를 파악. 순양함 시카고 호와 캔버라 호, 그리고 구축함 패터슨 호와 베글리 호가 대기중이었다. 곧이어 일본군의 공격이 개시. 당시 일본군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장거리 어뢰로 무장하고 있었다. 


호주의 순양함 캔버라 호가 먼저 두발을 맞았고, 일본군의 함포 사격까지 가세해 그대로 바다위에서 꼼짝할 수 없게된다. 패터슨 호도 일본군으로 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고, 미군의 베글리호도 어뢰를 발사했지만, 단 한발도 명중되지 못했다. 



6분만에 연합군 남부 함대는 일본군에 의해 완전 궤멸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일본군은 북부 함대를 향해 진격...북부 함대도 치명타를 입게되었다. 일본군은 그 상태로 밀어부치지 않고, 서둘러 귀환. 왜냐하면 항공기가 없었기 때문에 날이 밝으면 미군 전투기들이 반격해 오리라 예상되었다. 


일본으로서는 좋은 기회를 놓쳤고, 연합군으로서는 다행이었다. 


1,077명의 미 해군이 전사, 부상자 700여명. 

이것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참담한 패배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