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매장되어 있는 스페인, 피게레스 묘지에서 발굴되었다.
목적은 해골의 DNA를 채취하고, 필라 아벨이라는 타로 카드 점술이 일으킨 친부 확인 소송에 사용되기 위해서였다.
최근 유명 인사의 시신 발굴 자체가 DNA 연구의 발전에 따라 트렌드가 되고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연쇄 살인자 H.H 홈즈, 시인 파블로 네루다,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루 아라파트 등 면면의 무덤이 발굴 되었다.
하지만 연구자가 무덤을 파헤쳐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아직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다.
1.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사가 들의 국제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두개골에서 얼굴을 재현하거나 식사를 조사하거나 또는 사인을 특정하는 것등을 생각하고 있다.
다빈치의 유해는 프랑스, 앙부아즈 성내의 산후로란탄 교회에 있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프랑스 혁명으로 파괴되어 버렸다(19세기의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시신을 회수하여, 근처의 교회에 매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빈치는 붓 외에도 손가락으로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J.C 벤터 연구소의 전문가가 다빈치의 그림에서 그의 DNA를 추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채취한다면, 그것의 그의 후손의 DNA와 본인의 것으로 알려져 있던 묘지에 매장 된 시신의 DNA와 비교 할 예정.
2. 메리웨더 루이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탐험가이지만, 그의 죽음은 역사의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1809년 10월 10일 밤, 워싱턴 DC에 가는 도중에 묵었던 테네시 통나무 집에서 메리웨더 루이스의 몸에 일어난 사건은 지금도 불분명하다.
다음날 아침 그는 시체가 되어있었다. 자살(우울증, 알코올 중독이며, 매독의 의심도 있다)과 타살(도둑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의 가능성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그의 후손과 학자들은, 국립 공원 서비스 랜드에 매장 된 루이스의 발굴 허가를 얻으려고 내무부에 제의했지만, 결국 허가를 받지 못했다. 루이스의 수수께끼는 묘에 묻혀있다.
3. 셰익스피어
다음의 비문은 그의 묘비에 남아있는 저주이다.
"벗들이여 부탁하네. 제발 참아주게. 여기 묻힌 것은, 티끌도 파헤치지 말아주게. 무덤의 돌 하나 건드리지 않는 자에게 축복이, 내 뼈를 옮기려는 자에게 저주 있으리"
물론, 그것으로 포기하는 연구자들은 없다. 리처드 3세를 발굴 한 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연구진은 식생활과 라이프 스타일, 심지어는 대마초를 사용했다라는 소문을 밝혀내기 위해 다음 대상은 셰익스피어로 정했다고.
발굴이 요구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사실 2016년의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의 두개골이 누락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4. 링컨의 암살자 존 윌크스 부스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컹의 죽음에 얽힌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것이겠지만, 그 암살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이란적으로 존 윌크스 부스는 링컨이 죽은 12일 후에 버지니아의 헛간에서 사살 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와 그의 가족은 그가 가명을 자칭하고, 그 후에도 살아남아 죽은 것은 1903년 오클라호마에서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스의 시신은 이미 발굴되어, 2번이나 본인임이 확인되고 있지만, 여전히 찜찜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1994년 연구자 2명과 부스가의 작가 22명이 재발굴 허가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것은 기각되었다. 미국 국립 건강 의학 박물관에는 부스의 척수 샘플이 소장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DNA를 채취한다는 계획도 있다.
5. 나폴레옹
사실, 이미 한번 발굴되었다.
1840년, 세인트 헬레나 유배의 묘소에서 파리의 앵발리드로 옮겨졌을 때의 일이다. 하지만, 파리의 무덤은 가까라는 설이 있다. 거기에 묻혀있는 것은 원래 황제가 아니라 그의 집사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나폴레옹의 유해는 영국이 독살 또는 태만을 은폐하기 위해 웨스트 민스턴 사원에 숨긴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국방부는 이 이론을 좋게는 생각하지 않고, 2002년에 제출 된 발굴 조사의 원서를 거부하고 있다.
6. 헨리 8세
튜더 왕조의 헨리 8세는, 젊은 시절은 매력이 넘치고 명군으로 명예가 높았지만, 40세가 되자 쇠퇴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의 연구는, 아내의 수 차례에 걸친 유산을 비롯한 그의 수난은 혈중 항원과 매 클라우드 증후군이라는 유전 질환이 원인 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 논문을 발표 한 연구자들은, 그 학설을 검증하기 위해 왕의 시신을 발굴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왕의 시신은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묻혀있고, 발굴에는 여왕의 허가가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는 단순한 가설에 불과하다.
7. 갈릴레오
저 세상에서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지지자들은 산타 크로체 성당에 극진하게 매장되고 싶어했지만, 갈릴레오는 종탑의 아래에 있는 옷장 크기의 방에서 100년 정도 보낼 처지가 되었다.(이단의 낙인도 서서히 옅어질 무렵 더 적합한 장소로 옮겨졌다)
보다 최근에는 영국과 이탈리아 연구진이 시신에서 DNA를 채취하여, 갈릴레오의 시력에 관한 의문을 해명하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다.
그는 토성이 둥글지 않다고 발언하는 등 여러 유명한 실수를 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시력 문제에 있었다고 의심되는 것이다. 바티칸은 발굴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지만,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