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공포의 전사 톱 10

세계사에 등장하는 각나라와 제국의 파워는, 그 병사의 강도와 비례했다고 생각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미래의 성장과 권력은, 정예들이 전장에서 발휘하는 힘을 보면 대략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출중한 전사들 중에서도 특히 정예라고 여겨지는 세계 각지의 강자들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 역사에 등장하는 최강의 전사들은....



▲10. 중세 기사


처음 기사가 등장 한 것은 8세기 샤를 마뉴의 통지시대. 9세기에는 많은 기사와 귀족이 왕의 영토를 주고 그 대가로 유사시 전쟁에 나섰다. 요즘은 기사라고 하면 그렇게 강력하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 같지만, 당시에는 기사들의 횡포가 무서워 다들 두려워했을 것이다.


어쨌든 기사의 대명사라고 하면, 말을 타고 창을 쥔 모습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14세기가 되면서부터 도보로 활약하게 된다. 중세 기사라고해도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9. 몽골 궁병


몽골의 궁기병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의 유목을 하던 유목민에서 탄생. 정착 사회를 형성 한 해안 지역과는 달리, 임시 거로로 유라시아 대륙을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유목민의 남자들은 대부분을 말 위에서 보내고, 말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말 다루는 것이 탁월. 궁기병이 사용한 활은 축이되는 나무 프레임에 동물의 힘줄 층과 뿔 층을 설치 한 합성 활이다. 마상에서도 취급하기 쉽도록 짧게 설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기는 힘은 45kg나 되는 강력한 것이었다고 한다.



▲8. 잉글랜드의 장궁병


1415년 영국과 프랑스가 전투를 벌였던 아쟁쿠르 전투는 잉글랜드의 장궁병이 올린 전과로 가장 유명. 헨리 5세가 이끄는 잉글랜드 군의 장궁 부대는 3배 가까운 프랑스 군의 중장기 병을 압도했다.




중세 활 당기는 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있고, 90~110파운드(40.8 ~ 49.8kg)라는 설과 더 무거운 150~160 파운드(68~72.5kg)라는 설이 있다. 이것을 당겨 취급하는데에는 상당히 어려운 일. 즉, 영국의 장궁병은 매우 강력한 활을 취급하기 위해 고도로 훈련된 군인이었다는 것이다.



▲7. 제노바 석궁병


이탈리아 세력과 외세의 어느쪽에 대해서도 용병으로 조직, 그들은 숙련된 군인 인데다 비교적 다수의 병사를 동원 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부탬이되었다. 전문적인 석궁병을 정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제노바의 해양 정책에 기인한 것 같다.



▲6. 스파르타 전사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이다. "스파르타 교육"으로 알려진 특징적인 군사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도시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장 보병이 주력을 이루었지만, 그 교육 제도 덕분에 고대 그리스 최강의 군대를 자랑했다.


확실히 스파르타 전사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군인이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헌법, 교육제도, 철학 몬화, 경제력, 외교력, 심지어 음악과 춤에서도 존경받는 존재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육체의 단련보다 지식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스파르타의특징"이라고 말했다.



▲5. 페르시아의 불사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정원 1만명의 중보병이 정예부대. 불사 부대로 뽑히는 것은 영광이었다. 그 이름은 고고학자가 아타나토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기원으로 하고있으며, 오늘날 불사 부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대부분 그의 설명에 의한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아타나토이라고 부른 누군가가 죽거나 부상하거나 하면, 즉시 다른 병사가 보충되었기 때문이다. 적의 느낌으로는 항상 일정한 수의 병사들이 있는다고 해서 불멸과 부활을 연상케 했다.



▲4. 마오리 전사


용기와 용맹으로 알려진 마오리 부대는 합이라고 했다. 수백 단위가 되는 것은 드물고, 100명 미만의 합이 있었다. 대부분의 전사는 남성이지만, 여전사도 있었다.


마오리 전사는 보통 새벽에 싸웠다. 매복과 기습을 자랑하고 있으며, 뉴질랜드 열대 우림에 소리없이 녹아 들 수 있었다. 



▲3. 바이킹 전사


중세 초기 역사에서 북방의 군사, 중상주의 정책, 이민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현재 바이킹의 이미지는 꽤 요란스러운 타입이지만, 본래의 바이킹은 약탈을 주로 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1년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내는 어부와 농부들이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 이 지역 리더의 소집에 의해, 약탈, 무역, 이주할 수 있는 토지 등을 찾아 바다로 나섰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바이킹"이라는 용어가 인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이킹스와 나치 해양 원정을 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인 장비는 창, 방패, 도끼, 칼과 쇠사슬 등이다.



▲2. 일본의 사무라이(무사)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 사무라이는 "봉건 사회 시대의 일본을 대표하는 전사"라는 인식이라고. 실제로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일본의 관인 신분 호칭 또는 거기에서 발전으로 생긴 무사의 별칭이다.


일본도의 취급에 능하고, 전장에서 활과 창을 사용했다. 또한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통해 총도 일찍 일찍입수 했다.



▲1. 로마 군단


로리카 세구멘타타를 입은 로마 군인들은, 고대의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이라고나 할까... 장비와 역할은 시대와 함께 크게 바뀌었다. 제정 로마 후의 장비는 상당히 그리스 풍의 방패와 창으로 유명한 그라디우스로 변화했다. 


규율을 존중하는 자세와 조밀 한 진형으로 싸우는 전법은 전설이다. 특히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고도로 훈련된 직업적인 중장 보병이 탄생, 진군, 전투, 건설, 정찰 등의 임무를 맡았다. 종군 기간은 25년,. 조건은 로마 시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