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암살 54년, 5가지 유력한 음모설

지금으로부터 약 54년 전인 1963년 11월, 재임 3년차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텍사스 달라스를 방문 도중 암살되었다.


워렌 위원회라는 사건 조사위원회는, 전 해병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씨가 현장 근처의 교과서 창고 건물에서 대통령을 저격했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사실 관계의 불투명 함에 의해 많은 음모론이 부상했었다.



그 중에는 CIA(미국 중앙 정보국)의 음모론이나 마피아에 의한 암살성, 당시 부통령 린든 B 존슨에 의한 비밀 공작설 등이 있다.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는 암살 사건에 대한 3100의 기밀 문서를 이번주 26일(현지 시간)에 공개. Business Insider는 문서의 공개에 맞춰 소용돌이 치는 음모 이론 중에서도 유력시되는 5가지를 소개.



■ CIA 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CIA가 관여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CIA가 대통령의 쿠바와 공산주의에 대한 자세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음모론은,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노린 CIA에 의한 피그스만 침공에 대한 항공 지원을 거부 한 것이 암살의 계기가 되었다고하는 설이다.


이 이론의 지지자는 범인이라고 단정 된 오스왈드 씨는 CIA의 희생양으로 이용되었다고 생각...



■ 마피아 설

관련하는 또 하나의 논제로는, CIA가 마피아와 협력하여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설이있다. 당시 이 두 조직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통의 이익이 있었다. 마피아에게 그들이 투자하는 쿠바 카지노가 폐쇄 위기에 노출 된 것이다.




정부가 이전 공개 한 기밀 문서에 따르면, CIA가 마피아에게 작용, 카스트로를 살해하려고 한 것을 알고있다.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CIA와 마피아가 반 카스트로 파 쿠바인과 짜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실행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망명 쿠바 인 설

정보 음모론에 비해 허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설은 피그스만 침공의 실패를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적임자가 이닌 충분한 증거와 본 망명 쿠바 인의 무장 그룹이 암살을 실행했다고 하는 것이다.


쿠바 혁명으로 카스트로 정권이 탄생 한 1959년부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된 1963년까지, 케네디 대통령의 인기는 망명 쿠바 인들 사이에서 현저하게 떨어졌다. 1963년 10월에는 반 카스트로 파의 쿠바 인들이 미국인의 우파 그룹을 만나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나눴다.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회의가 한 달 뒤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 부통령(린든 B 존슨) 설

1964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의 낙선을 두려워 한 당시 부통령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씨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을 기도했다고 하는 설도 유력하다.




케네디 대통령의 개인 비서, 에블린 링컨(Evelyn Lincoln) 씨가 1968년 출간 한 회고록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이 부통령의 존슨을 경질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1963년 11월 19일, 총격의 3일 전에 케네디 대통령이 링컨 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존슨이 암살에 관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증거의 일부로해서, 이 당시 상황을 들고있다.



■ KGB(소련 국가 보안위원회)설

공산당 제1서기(당시)의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rushchev) 씨가 지시 한 구소련의 갱이,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실행범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흐루시초프 씨는 미국에 의한 해상 봉쇄의 결과 쿠바에 배치 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결국 철거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것이 흐루시초프 씨의 케네디 대통령 살해의 동기가 되었다고 주장.